꿈이 없던 아이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특별히 되고 싶은 것이 없었습니다. 뚜렷한 장래희망도,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도 없이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나마 오래 좋아했던 것은 컴퓨터였습니다. 컴퓨터를 만지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해보는 일,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2015년, 막연하게나마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학부에 진학했습니다.
01 / 걸어온 길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 특별히 되고 싶은 것이 없었습니다. 뚜렷한 장래희망도, 반드시 해보고 싶은 일도 없이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나마 오래 좋아했던 것은 컴퓨터였습니다. 컴퓨터를 만지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해보는 일, 직접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과정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2015년, 막연하게나마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학부에 진학했습니다.
대학에 진학한 이듬해 겨울 군에 입대했습니다. 학업과 일상에서 떨어져 지내는 동안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처음으로 오래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입대 전까지는 익숙한 것 안에서만 진로를 생각했다면, 군 복무 기간에는 전역 후에는 전혀 다른 분야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기 중 하나가 이 시기에 만들어졌습니다.
2017년 전역 후 처음 디자인을 접했습니다. 전공 수업이나 회사가 아니라 혼자 공부하며 작은 일을 직접 받아보는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크몽, 라우드소싱 같은 디자인 마켓과 공모 플랫폼을 통해 로고와 간단한 그래픽 작업을 맡았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의 요청을 듣고, 생각을 시각적인 결과물로 만들어 전달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분야를 경험해본다는 마음이 컸지만, 실제 누군가가 제가 만든 디자인을 사용하고 다시 일을 맡기는 경험이 반복되면서 디자인이 점점 제 일상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외주를 계속 진행하면서 작업량이 조금씩 늘었습니다. 한 번 작업한 클라이언트가 다시 연락을 주고, 소개를 통해 새로운 의뢰가 이어지면서 더 이상 취미나 부업처럼 다루기 어려워졌습니다.
2019년에는 간이사업자를 내고 처음으로 디자인 일을 사업의 형태로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디자인만 하면 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견적을 만들고 일정을 관리하고 클라이언트와 소통하며 제작과 납품까지 책임져야 했습니다.
이 시기에 디자인을 잘하는 것과 일을 잘 운영하는 것이 전혀 다른 능력이라는 것을 처음 배웠습니다.
2020년 처음으로 정식 사업자를 등록하고 나인웍스를 시작했습니다. 로고와 브랜드 아이덴티티, 패키지와 편집디자인처럼 당시 가장 많이 해왔던 시각디자인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혼자 프로젝트의 처음과 끝을 책임지면서 단순히 예쁜 결과물을 만드는 것보다 클라이언트가 왜 이 디자인을 필요로 하는지 이해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브랜드의 상황과 제품, 고객, 판매 방식까지 함께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디자인 이전의 기획과 디자인 이후의 운영에도 관심이 넓어졌습니다.
2021년 처음으로 정부지원사업을 경험했습니다. 일반적인 디자인 외주와 달리 사업계획, 시장, 제품, 고객과 성과 목표를 먼저 이해해야 했고, 그 위에서 디자인의 역할을 정해야 했습니다.
이 경험을 계기로 로고와 패키지 중심이었던 업무가 UX/UI, 상세페이지, 웹 콘텐츠, 사업자료와 서비스 기획으로 넓어졌습니다.
디자인은 프로젝트의 마지막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사업이 움직이는 과정 안에서 필요한 여러 해결 방법 중 하나라는 관점을 이때부터 조금씩 갖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가 늘면서 처음으로 연매출 1억 원을 넘었습니다. 동시에 혼자 모든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도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하려면 디자인뿐 아니라 일정, 계약, 커뮤니케이션, 외부 파트너와의 협업을 하나의 흐름으로 관리해야 했습니다. 작업자가 아니라 운영자의 시선으로 일을 보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같은 해 국민대학교 대학원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실무에서 디자인을 만들면서도 왜 이런 디자인이 필요한지, 실무에서 당연하게 지나치던 판단을 학문적으로 설명해보고 싶었습니다.
클라이언트와 미팅하고 협업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서울과 더 가까운 곳으로 업무 환경을 옮겼습니다. 직접 만나 대화하고 빠르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직원 채용을 시작했고, 프리랜서와 외부 파트너와의 협업도 늘렸습니다. 모든 결과물을 혼자 만드는 것보다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고 역할을 나누며 전체 결과를 관리하는 일이 중요해졌습니다.
스타트업과 기업을 더 많이 만나면서 브랜드 디자인을 넘어 사업계획, IR, 서비스 구조와 성장 방향을 함께 이야기하는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늘어났습니다.
대학원에서는 친환경 패키지 디자인 인쇄를 위한 지류 특성을 주제로 석사 논문을 작성했습니다. 실제 패키지 프로젝트에서 반복해서 마주했던 소재와 인쇄의 문제를 연구의 언어로 정리해본 첫 경험이었습니다.
동시에 대학 강의와 특강을 시작했습니다. 직접 할 때는 감각적으로 판단했던 것들을 학생에게 설명하려면 기준과 이유를 더 명확하게 정리해야 했습니다. 가르치는 과정은 오히려 제가 해온 일을 다시 공부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디자인 공모전 심사와 스타트업 컨설팅 활동도 늘면서 만드는 사람을 넘어 다른 프로젝트의 방향을 살펴보고 조언하는 역할까지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2025년에는 누적 거래 클라이언트가 400곳을 넘어섰고, 연매출도 처음으로 4억 원을 넘었습니다. 숫자보다 더 크게 달라진 것은 제가 다루는 문제의 범위였습니다.
처음 시작했던 로고와 패키지에서 브랜드 전략, 편집디자인, UX/UI, 웹 개발, 상세페이지, IR, 지원사업, 컨설팅, 교육과 연구까지 업무가 넓어졌습니다.
또 박사과정을 시작하며 지금까지 실무에서 쌓아온 경험을 더 긴 호흡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을 더 많이 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경험을 연결해 제 방식으로 정리하는 것이 다음 단계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개발자를 꿈꿨고, 디자인을 만나 디자이너가 되었으며, 일을 계속하다 보니 기획과 사업, 개발과 연구, 교육과 글쓰기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지금도 하나의 직함으로 저를 정리하기보다 제가 관심을 가진 문제를 직접 배우고 만들어보는 방식을 선호합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과 경험이 다음 일을 계속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진심으로 대하고, 맡은 일에 자기만의 책임과 애정을 갖는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그런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순간에는 여전히 설렙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며 자연스럽게 동기부여를 얻고, 저 역시 제 일을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그렇게 사람에게서 받은 생각과 경험이 하나씩 쌓여 다음 도전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고, 다시 누군가에게 좋은 영향을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거창한 성공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오래 좋아할 수 있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서로 조금씩 성장해가는 삶을 꿈꿉니다.